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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거리는 삶/꿈

숙취


삐비비비빅. 삐비비비빅. 지겨운 전자음이 귓볼을 자근자근 씹는다. 몇번이고 무시하고 몇분이고 침묵해 보지만, 내 주먹 반쪼가리보다 조금 더 커다란 자명종은 쉴새없지 제잘거림을 선사한다. 머리는 배게밑으로. 다리와 어께사이로 칭칭 감긴 이불새로 꿈틀거리며 자명종을 더듬더듬 찾아 그 조그만 머리를 또각- 하고 눌러주니 그 녀석은 그제야 날카롭고 치명적인 속삭임을 멈추는 것이었다.

  매일 아침, 그 평소와 처럼 다가온 아침이 었지만 그 어느 날 만큼도 유쾌하지 않고, 그 어떤 날보다도 짜증이 치밀려 온다.

  머리는 무겁다. 아니 세계가 무겁다. 양 어깨위로 걸친 피로는 한지붕 곰세마리가 걸터 앉았다 해도 비견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오늘이 출근이었던가? 기이한 부유감속에서 나의 의식끝이 잡은 질문은 바로 그 것이었다. 지난 십여년간 몸에 베인 습관이다. 아침이 온다. 자명종이 울린다. 생각한다. 오늘이 학교를 가던 날인가? 오늘은 출근을 해야 하는 날일까? 파블로스의 개가 종소리에 침을 흘리고 위액을 분비하여 '나 밥먹을 준비를 했소-'라고 반응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자명종이 울린다. 반사적으로 자명종소리를 해체하고, 반자동적으로 사고한다. '내 하루의 시작은 어떤식으로 굴려먹어야 할 것인가?' 쳇바퀴 돌 듯 세상을 산다는 것은 그러한 것이다. 반복 또 반복.

  머리가 지긋지긋하게 아팠다. 지끈지끈 아픈게 아니라 지긋지긋 하게 아프다. 습관성 편두통처럼 떠밀려오는 그 고통은 디즈니 만화동t산에서 따닥 거리는 딱따구리 삼천마리쯤이 내 뇌하수체 아래 둥지를 틀었다 생각될 정도이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정말 딱 그정도의 느낌인 것이다.

  몇 번인가의 심호홉 끝에 두통이 좀 진정되는듯 했다. 그리곤 이제 자명종대신 저 캄캄한 어제의 기억 끄트머리를 찾아 더듬더듬 거려 본다. 단편과 단편으로 기억의 편린들이 직소퍼즐 맞추듯이 형태를 이루어간다. 울었다. 그것도 굉장히 서럽게 운듯 하다. 눈꺼플이 축축하면서도 눈은 정작 뻣뻣한걸 보니 정말 많이도 운듯 하다. 마셨다. 그것도 근래중에 최고의 폭음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삼키는 침방울은 날카로운 침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입천장에서는 아직도 쏘주의 그 쓰디씀이 느껴졌다.

  아직 창창한 20대임에도 나이완 상관없이 삭식이 저려온다. 과음. 절대 하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맹새하였는데...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어제는 정말 일이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자기를 위로하고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잠시 세상이 핑- 하고 돌았다. 그리고 잉-하는 이명이 뇌속으로부터 흘러 나왔다. 침대 모서리르 잡고 겨우 버티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조금씩 내뱉으며 한발을 조심스레 내딛어 보지만 역시나 머리는 쿵쾅거리고 입에서는 으윽 하는 신음소리가 비집고 나왔다. 하아- 몸뚱아리야. 이제 그만 일어서자꾸나. 이미 한참을 뒹굴거린 것으로는 만족 할 수 없는 거야?

  따듯하게 우유를 덥히고 설탕을 조금 너어 속을 달랬다. 아침을 먹기에는 속도 속일 뿐더러 어제 섭취한 칼로리가 허리를 메운다. 술을 마신다는 것. 그 중에서도 폭음을 한다는 것은 정말 여러모로 해악이지만...언젠가 또 이런 바보스런 짓거리를 반복할 것이다. 일상을 굴리듯. 쳇바퀴 돌리듯.

  청조해야할 한참 나이의 아가씨는 창밖 적적한 공원거리를 바라보며 내리 한숨을 쉬었다. 피곤에 찌든- 그리고 아직 술기운이 베인 그런 한숨이 더욱더 그녀를 쓸쓸하게 만들었다. 하아. 다시 금 한숨이 새어나온다.

  코를 쿨적이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눈물을 참으려니 코가 먼저 흘러 훌쩍이게 했다.  슬픔을 참아봐야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어버린다. 눈물이 가득담긴 눈동자는 분명 슬퍼보이겠지? 그 애도 눈이 참 슬퍼보였는데... 정신이 조금 맑아졌다싶자 마자 오만가지 생각이 쏟아져 내리고 잠시 가셨던 두통을 해일처럼 나를 몰아붙여갔다. 그 사람. 그 사람으로 귀결되는 감정들. 그 애가 나쁜거야. 그 녀석이 나쁜거야. 너가 나쁜거야. 참 나쁜거야. 그런거야.

  코를 몇번더 쿨쩍이더니 기어코 눈물이 흘렀다. 아- 정말 어제 그만큼 울어쓰면서도 아직까지 흘릴 눈물이 남아 있다니. 억지로 참던 눈물이 한번 내뱉어 지면 더욱 참기 어려운 법이다. 꽉 문 입술이 일그러지더니 이내 흐느끼는 소리를 내었다.

 

  "너가 나쁜거야."

  깊숙히 되뇌이던 마음이 단어가 되어 흘러나왔다. 아파. 너무 아파. 터진 입술도 쓰라린 속도 흔들거리는 머리도 넘 너무 아파.

  "맞아..너가 나쁜거야."

  나빠. 넌 너무 나빠. 넌 정말 못된 사람이야.

  이렇게 아픈데, 이렇게 슬픈데, 이렇게 가슴이 아리는데 넌 어디를 가버린 거니?

  너 때문에 가슴이 너무 아파.

 

  '미안...'

  멀리서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그 슬픈듯한. 흐릿한 눈동자 앞으로 그의 모습이 비친다. 사실은 먼저 말하고 싶었다.

 

  "미안..미안해....내가 너무 나빠서 미안해...."

 

  흐르는 눈물을 흠쳤다. 더 많은 눈물이 흘렀다. 소매가 축축해지고 더러워져도 눈물은 계속해서 흘렀다. 짠맛. 입술로 스며든 눈물의 슬픈 맛.

  두팔을 개고 쓰러지듯 엎드렸다. 소매를 꽉물었지만 억누른 울음소리가 나왔다. 그래서 더 슬펐다.

 

  눈물이 멈췄다. 격한 검정에 숨이 거칠어졌다. 감정이 식어가면서 고통이 다시금 침식해 온다. 치는듯한 두통. 싸하고 아릿하고 갑갑한 듯한 가슴...

 

 

  이번 숙취는 참 오래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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