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시월에 대한 찬가.
“미친놈!! 시월이 죽어? 내가 당장 죽게 생겼다고 전해!! 시덥잖은 농담 할 기운 있으면 여기 소주나 한 병 더 갔다 줘!!”
부고를 알려주었던 K군의 말에 따르면 나는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서슴없이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 후로 K는 몇 번이고 내게 연락을 하였지만,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시도는 계속해서 어긋나, 내가 시월의 사망소식을 접한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나고도 사흘이나 지난 날의 오후였다. K가 아닌 L양의 침통한 목소리를 접한 나는 몇 번이고 시월의 죽음을 되물었다. 젖은 L양의 목소리와 모든 정황에 시월의 죽음이 확신 되자 나는 허겁지겁 외투를 껴입고
그의 빈소를 찾아갔다. 빈소는 시월의 모습을 닮아 더욱 고독하고 외로웠다. 예의 장례식장이 눈물과 웃음 희비가 뒤섞인 온갖 감정의 향연이라 한다면 시월의 빈소는 국, 밥, 김치만이 덩그란히 놓인 식탁처럼 느껴졌다. 소리 없이 곡하는 시월의 노모 손을 잡고 나 또한 눈물을 흘렸다.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시월의 영전사진과 눈이 마주쳤다.
‘썩을놈. 죽여도 죽지 않을 것처럼 굴더니 이렇게도 먼저 가버리는 것이냐? 에라이, 염병맞을 놈..’
흐르는 눈물과 흐느낌은 있어도 귀를 아리는 곡은 없다. 시월의 장례를 그렇게 조용히 치루어 졌다. 상여를 메고 산을 오르고 관을 내려놓고 흙을 덮는다. 한웅큼 삽으로 파 올린 흙더미가 봉분을 만들고 다진 봉분위로 잔디를 심고, 그 위로 막걸리 한 사발 흘려준다. 이내 결국 노모는 비석올릴 자리에 쓰러져 곡을 한다. 아이고- 아이고- 구슬픈 어머니의 울음이 산에 산을 넘어 메아리친다. 막걸리 한 사발을 비우고, 다시 한 사발을 올리고 새로 한병 따서 목구멍이 넘치도록 술을 부어본다. 쌉쌀달콤한 막걸리 한 사발. 너와 내가 즐겨 했던 막걸리 한 사발. 나는 그렇게 술로서 시월을 죽여 갔다. 이 술이 떨어지면 나는 현실로서 너를 지울 것이다. 노모의 곡이 끝나면 진실로 너는 지워져 가겠지. 그러니까 나는 술을 멈출 수 없다. 그러기에 노모의 곡은 끝나지 않는다. 시월, 네놈은 죽어서도 고독한 놈이구나. 벌컥이는 막걸리 사이로 나의 눈물이 흘러온다. 쌉쌀달콤했던 막걸 리가 이제 쌉싸름하고 짭짜름한 맛이 되었다. 나는 막걸리를 들이켰다.
시월은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함께 한 놈 이었다.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해 그와 지난 것은 평생의 10분지 1도 안되긴 하지만 나는 시월만큼은 특별히 사랑했다. 그는 늘상 외로움과 고독을 지고 사는 사람이었다. 거의 걸음걸음에 짙게 쓸쓸함이 베어있는 사람. 나는 그런 그의 외로움이 견딜 수 없이 싫었지만, 그를 둘러싼 고독을 참을 수 없을 만큼 사랑했다.
그는 근본적으로 상냥한 사람이었다. 언제나 따듯한 햇살 같았으며, 눈을 맑고 시원했다. 그가 씁쓸하게 미소 지을 때는 시월, 그는 참 멋있는 사람이라고 다시 한번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투박한 표현 정적을 불러오는 무뚝뚝함. 그는 그에게 베인 짙은 외로움에도 불가하고 너무도 상냥하고 따듯한 사람이었다.
그는 뛰어난 일꾼이고 자애로운 사람이었다. 그의 손에 이루어서야 결실을 맺는 것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시월의 경의로운 솜씨에 반한 이들은 일부로 시월에게서만 일을 맺기도 하였다. 시월은 그런 부탁을 마다하지 않았고 늘 최선을 다하여 그 결실을 돌려주었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사랑하는 시월. 이제 너가 세상에 없다니. 나는 이제 누구와 고독을 논하며 술에 빠지고 외로움을 즐겨 볼 것인가. 나는 시월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술을 마셨다. 그의 빈자리는 쓰디쓴 안주이자 내 노스텔지어를 불러오는 마법의 거울이다. 시월의 추억을 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취해가는 나를 멀리로 두고 두 명의 사내가 주정을 부리고 있었다. 아련해지는 나의 기억너머로 그들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야, 시월이 죽었다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 하! 구월 다음에 오는게 십일월인 세상이 오다니, 정말 빌어먹겠군. 본디 그렇게 길지도 않던 일년인데- 그 덕에 나잇살 만 더 일찍 먹게 생겼어. 에이~ 빌어먹을 세상!”
“그러게 말이야. 이로서 가을이 줄어들게 생겼구만, 그 놈의 온난화인지 뭔지 한테 만날 시달리더니 결국 죽어버렸어. 듣자하니 구월도 만날 쥐어 터져 비실비실 거린다던데. 이러다 우리 가을 구경 못하는 시대에 살게 되는거 아니야? ”
이렇게 시월은 죽었다. 그래, 얼마간은 너네 만취한 하루하루에 안주거리가 되겠지. 하지만 머지 않아 1년 11달이 익숙한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찬양하거라. 나의 시월을. 가을의 한 축을. 우리가 사랑했던 그 고독한 시절을.
나는 술로서 눈물로서 시월을 찬양하겠다.